가끔 그런 날이 있다.말로 설명하기는 애매한데,그냥 좀… 마음이 느려지는 날. 해야 할 건 많은데 손이 잘 안 움직이고,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시간만 흘러버린 날. 그럴 때,나는 주방으로 간다. 거창한 요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누가 먹을 것도 아니다.그냥 냄비 하나 꺼내서물을 올리고,달그락달그락 칼질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정리가 된다.머릿속도, 마음속도. 물을 끓이고,후라이팬에서 무언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고,손끝으로 재료를 느끼고,김이 피어오르는 걸 바라보면“괜찮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완성된 음식은맛있을 때도 있고,그저 그런 날도 있지만그건 중요하지 않다. 요리를 했다는 행위 자체가이미 오늘을 살아낸 증거니까.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예쁘게 담지 않아도,그릇을 비..